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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散文)/용어(用語)

변화(變化)란 무엇인가?

by 안화유 2023. 1. 4.

변화에의 요구

너희는 이 세대(世代)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變化)를 받아, 하나님의 선(善)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穩全)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分別)하도록 하라.(롬 12:2)

 

성경은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변화(變化)란 무엇일까요? 

 

변화란 무엇인가?

물을 끓일 때 온도가 서서히 바뀌는 상태를 '변(變)'이라고 합니다. 온도가 10℃, 20℃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50℃, 70℃로 시간에 따라 계속 바뀌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게 온도가 계속 바뀌어도 '물'은 그저 액체로 존재하는 '물'일 뿐입니다.

 

그러나 계속 달라지는 변(變)의 상태가 지속되다가, 온도가 일정한 '임계점(臨界點:성질이 바뀌는 경계점)'에 도달하게 되면, 물은 이제 더이상 '물'이 아닌 '다른 존재'로 바뀌게 됩니다. 어떤 존재가 임계점을 넘어서 성질이 완전히 다른 상태로 바뀐 그것을 '화(化)'라고 합니다.

 

따라서 액체인 물의 온도가 계속 올라가다가 100℃라는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물'은 더이상 '물'이 아니라, '기체'인 '수증기'로 바뀌게 됩니다. 즉 성질이 완전히 달라져서, 물리적(物理的) 속성 자체가 바뀌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 모든 과정을 합해서 '변화(變化)'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임계점을 넘는 것의 중요성

따라서 이런 변화(變化)는 변(變)의 상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믿음으로 인해서 나의 입장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며, 나의 자세가 예전과는 달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달라지는 정도가 임계점(臨界點)을 넘어서서 '화(化)'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물이 아무리 온도가 바뀌어도, '물'은 여전히 '물'일 수 밖에 없는 것처럼, 우리 옛사람도 속성이 완전히 바뀌어지는 임계점(臨界點)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옛사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변화(變化)에서 중요한 것은 무언가 달라지는 '변(變)'이 일어나고 있고, '변(變)'의 상태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존재로 속성이 바뀌는 '화(化)'라는 결과를 이루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축구를 예로 들면 아무리 빌드업을 잘해 나가면 무슨 소용입니까? 아무리 점유율을 높이고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골을 넣지 못하면, 빌드업이 잘 되고 있고, 점유율이 높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변(變)'의 상태가 진행되고 있더라도, 결국 그 '달라지는 변(變)'이 '완전히 다른 존재로 태어나는 화(化)'에 이르지 못한다면, 그것은 '의미 있는 달라짐'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며, 그것은 '의미있는 바뀜'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않는 노력

따라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며, 자신의 삶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조금 바뀐 자신에 만족하고, 조금 달라진 자신에 만족한다면, 그것은 작은 성취에 만족하고 안주(安住)하는 어리석은 자에 머물러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공자(孔子)는 '중도이폐(中途而廢)'라고 했습니다. 길을 가는 중간에 포기하고 그만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작은 성공(成功)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노력을 기울이는 자세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러한 끊임없는 노력을 '절차탁마(切磋琢磨:자르고 갈며, 쪼고 갈아낸다)'라고 부릅니다.

 

나무나 옥(玉)을 가공할 때, 원석(原石)을 자르고 쪼아서 어느 정도의 형태를 만든 것에 만족하지 않고, 줄이나 사포 등을 이용해서 계속 매끄럽게 다듬고 다듬어 나가는 노력을 계속한다는 말입니다. 이런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을 통해서 투박한 돌맹이천하의 보물로 거듭나게 됩니다.

 

믿음의 삶에 있어서의 절차탁마

우리의 믿음의 삶에 있어서도 이런 절차탁마(切磋琢磨)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문제에 있어서는 이런 절차탁마(切磋琢磨)의 노력만으로는 온전한 변화(變化)를 이루기에는 부족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옥(玉)을 아무리 갈고 다듬어도 결국 돌[石석]일 뿐이라는 말입니다. 옥(玉)을 아무리 다듬어도 옥(玉)이 살아서 움직이는 물건이 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절차탁마(切磋琢磨)는 '변(變)'의 과정에 불과하다는 말입니다. 임계점(臨界點) 근처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절차탁마(切磋琢磨)를 통해서는 임계점(臨界點)을 넘어설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에 있어서 임계점(臨界點)은 무엇일까요? 임계점을 넘기 전의 상태는 '옛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예전과는 달라졌다고 해도 여전히 옛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나 임계점을 넘어선 사람은 '새사람'이 됩니다. 옛사람은 '육신(肉身)'의 소욕(所慾)을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새사람'은 '성령(聖靈)'의 소욕(所欲)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이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외적 요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임계점(臨界點)을 넘어설 수 있을까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변(變)은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달라짐을 향한 노력이요, 몸부림입니다. 그러나 그런 나의 노력과 몸부림만으로는 결코 임계점(臨界點)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임계점(臨界點)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내적(內的)인 노력만으로는 부족하고, 외적(外的)인 요소가 투입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콩물을 아무리 끓이고 저어도 두부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간수'를 살짝 넣어주기만 하면, 희한하게도 콩물이 몽글몽글 뭉쳐지면서 두부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틀에 넣고 눌러서 물기를 제거하면 바로 두부가 만들어집니다.

 

콩을 삶고 눌러서 콩물을 만들어 내는 과정은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직접 해야 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간수'를 넣는 과정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恩惠)의 영역입니다.

 

옛사람을 새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간수'는 바로 '성령(聖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아무리 믿음을 통해서 하늘의 도성(都城)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성령(聖靈)이라는 간수'가 더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조금 착한 것 같은 옛사람'에 불과할 뿐이라는 말입니다.

 

따라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음을 가진 것에 만족해서 편안하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되며, '성령(聖靈)'의 역사를 간구해야 합니다. 성령이 우리를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화시켜줄 '구원의 간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성경에서 다음과 같은 약속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에의 약속

너희가 악(惡)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天父)께서 구(求)하는 자에게 성령(聖靈)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삶을 완성시켜 줄 성령(聖靈)이라는 구원(救援)의 간수를 구(求)해야 합니다. 그저 구(求)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간절히 간구(懇求)해야 하며, 목마른 자가 물을 찾듯이 갈구(渴求)해야 합니다. '간수'가 없이는 두부를 만들 수 없는 것처럼, '성령(聖靈)'이 없이는 믿음의 여정을 완성해 갈 수 없고, '성령(聖靈)'이 없이는 구원(救援)의 여정을 완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求)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門)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求)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
예수께서 대답(對答)하시되, "진실(眞實)로 진실(眞實)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성령(聖靈)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肉)으로 난 것은 육(肉)이요 성령(聖靈)으로 난 것은 영(靈)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奇異)히 여기지 말라"(요 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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