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章) : 드러낼 장
章(장)이라는 글자는 내면에 간직한 아름답고 훌륭한 어떤 것이 겉으로 성대하게 드러나는 것을 뜻하는 글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드러난 찬란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다른 것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차원이 다른 아주 독특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너무 황홀하고 아름다운 것이기에 그것을 본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몰라 허둥거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감탄한 사람들은 드러난 그 아름답고 성대한 것들을 하나하나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음악에 담아 기록하여 사람들이 보고 따를 수 있는 본으로 삼고 모범으로 삼을 수 있게 했으며, 나아가 그렇게 살도록 법으로 규정했던 모양입니다.
옥편을 찾아보면 위의 모든 내용들이 章(장)이라는 하나의 글자 속에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章(장)이라는 글자가 얼마나 위대하며, 얼마나 대단한 것을 표현하고 있는 글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章(장)이라는 글자가 이렇게 훌륭하고 아름다운 뜻을 담고 있기에, 이런 것을 글로 드러내면 문장(文章)이 되고, 음악으로 드러내면 악장(樂章)이 되며, 나라에 큰 공을 세운 것을 드러내면 훈장(勳章)이 되고, 사람의 동일성을 드러내면 도장(圖章)이나 인장(印章)이 되며, 훌륭한 법을 드러내면 헌장(憲章)이 되고, 그 사람이나 단체가 얼마나 훌륭한지를 드러내면 휘장(徽章)이 되며, 군대에서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면 '견장(肩章)'이 되는 것입니다.
자형의 해석
그렇다면 章(장)이라는 글자 속에 품고 있는 그것이 과연 무엇이기에 이렇게 대단한 결과로 나타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위의 그림은 章(장)이라는 글자의 옛날 자형(字形)인 금문(金文)의 모양입니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습니다. 《문자원류》에서는 이 글자를 뾰족한 날이 있는 도구인 辛(신)을 이용해서 원과 그 속의 十(십) 자 모양의 그림을 그린 것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사실 위의 그림에서 둥근 원 모양과 그 속의 가로획 一을 제거하면 바로 辛(신)이라는 글자의 원래의 모양이 되기는 합니다.
좀 다른 해석
그러나 저는 이 글자를 좀 다른 시각으로 보고 싶습니다. 그것은 이 글자의 기본적 골격이 사람이 팔을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을 그린 立(립)자를 아래로 뒤집어 놓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글자는 立(립) 자의 갑골문인데, 章(장) 자의 기본적인 형태는 이 立(립) 자를 바닥을 기준으로 180도 돌려놓은 모습과 매우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금문(金文)의 자형에서 章(장)의 제3~4획인 V 모양은 두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모습을 그런 것이고, 그 아래에 양쪽으로 벌린 팔이 있으며, 또 ㅣ 로 표현된 몸통과 머리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一로 표현된 제2획은 땅을 표현한 것이고, 그 위의 작은 一로 표현된 제1획은 '이 곳이 윗쪽임'을 나타내는 지시(指示)의 표시라고 하겠습니다.
章(장)을 章으로 만드는 핵심 요소
이제 기본적인 설명은 거의 되었으니, 좀 더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章(장)이라는 글자의 핵심은 바로 田 모양의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동물과 달리 발달한 인간의 뇌(腦)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고귀한 눈[目]일까요? 아니면 다른 무엇일까요? 그것은 원래 사람 몸에 붙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수여된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 그렇게 생각할까요?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에서 田 모양으로 그려진 것은 어떤 존재가 상대방에게 수여하는 선물과 같은 것을 표현하는 모양으로 그려진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아래 그림에서 왼쪽의 두 개의 글자는 '주다(give)'라는 뜻의 畀(비)라는 글자의 금문이며, 오른쪽의 두 개의 그림은 '코(nose)'라는 뜻을 나타내는 鼻(비)라는 글자의 갑골문의 자형입니다.

왼쪽의 畀(비)라는 글자에서 상대방에게 수여되는 내용물은 田 모양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 내용물을 사람의 코에 집어넣는 모양을 그린 글자가 바로 오른쪽의 鼻(비)라는 글자입니다. 오른쪽 그림을 보면 윗 부분에 콧잔등이 있고, 양쪽으로 콧구멍이 그려져 있는데, 그 속으로 무엇을 넣어주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렇게 코에 선물을 넣어주는 것은 태초(太初)의 일입니다. 왜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鼻祖(비조)라는 말에서 보듯이, 鼻(비)라는 글자가 '시초(始初)'나 '처음에 일어난 일'을 뜻하는 글자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즉 이 선물의 수여는 태초(太初)에 생긴 일이라는 말이며, 맨 처음에 일어난 일을 표현하는 의미로 쓰여지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과연 콧 속에 무슨 선물이 주어졌을까요? 그것은 《성경》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生氣)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지라.
- 《성경·창세기》2:7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生氣)를 불어넣어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생기(生氣)는 단순한 흙덩어리를 살아있는 생령(生靈)으로 만드는 핵심 요소였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기에 이 생기(生氣)는 인간에게 주신 하나님의 크나큰 선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꾸로 서 있는 이유
그렇다면 3~4천 년 전, 한자를 처음 만든 사람들은 왜 이 사람을 굳이 땅 속에 집어넣은 모습으로 그렸을까요? 章(장)이라는 글자 속의 이 사람은 왜 땅 속에 거꾸로 박혀 있는 것일까요? 이 사람은 죽은 사람은 아닙니다. 죽은 사람은 死(사) 또는 亡(망)으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살았으나 죽은 것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죽은 사람처럼 땅 속에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땅 속은 보통 죽은 사람이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타고난 기질(氣質)에 구속되고, 육신의 욕구(慾求)에 휘말리며, 외물(外物)의 유혹에 흔들려서 짐승과 같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명색(名色)은 살았다고 하되, 그 실상(實狀)은 죽은 것이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찬란한 뜻을 부여한 이유
그렇다면 왜 죽은 것과 같은 상황에 처해져서 땅 속에 위치한 이 사람에게 저렇게 아름답고 훌륭한 뜻을 부여했을까요? 그것은 이 사람이 지금은 비록 죽은 것같은 상황에 처해 살고 있지만, 그 사람 속에는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한 보화(寶貨)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명덕(明德)이라고도 하고, 본연지성(本然之性)이라고도 하며, 감추인 보화(寶貨)라고도 하는,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착한 마음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금은 비록 매미의 애벌레나 나비의 유충처럼 어두컴컴한 땅 속에 갇혀 살아가야 하고, 캄캄한 고치 속에 갇혀서 살아가야 하는 불쌍한 존재이지만, 허물을 벗고 나오는 순간 더 이상 어두운 땅 속을 기어다니는 초라한 존재가 아니라 무한한 창공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자유로운 나비가 되는 것처럼,
章(장)이라는 글자 속의 저 사람도 언젠가는 입고 있는 허물을 벗고 자기 속에 있는 아름다운 마음을 마음껏 활짝 온 세상에 비추는 그런 빛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章(장)이라는 글자 속에 저토록 아름답고 훌륭한 뜻을 담아 격려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2. 장(障) : 막힐 장
章(장)이라는 글자는 사람들의 본질(本質)이 어떠한 것임을 표현하고 있는 글자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章(장)이라는 글자에 '좌부 방'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언덕 부[阝]'라는 글자를 더하면 障(장)이라는 글자가 되어, 그 아름답고 훌륭한 자질이 흙 속에 묻혀서 드러나지 못하고, 언덕에 막혀서 세상으로 흘러갈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을 표현하는 글자가 됩니다. 阝(부)라는 글자는 흙이 수북이 쌓여있는 것을 표현하는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章(장)이라는 저 글자 속의 사람 속에 있는 훌륭한 자질이 흙 속에 묻혀 있다는 障(장) 자(字)는 매우 의미있는 글자라고 하겠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졌고, 흙으로 만들어진 것은 육체(肉體)이기 때문에, 사람의 고귀한 성품(性品)이 육체(肉體) 속에 갇혀 있고, 육신(肉身)으로 인해서 막혀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글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육신(肉身)이라는 굴레에 갇혀서 하나님이 부여해 주신 고귀한 본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육신의 정욕(情慾)에 갇혀 살아가는 한심(寒心)한 인간의 실존(實存)을 그대로 드러내는 글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章(장)인 인간은 이 障(장)이라는 현상(現狀)을 넘어서 창(彰)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彰(창)은 章(장)이라는 사람의 아름다운 본성과 자질이 障(장)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아름답게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글자이기 때문입니다. 흙[阝부] 속에 갇히고, 육신(肉身)의 굴레에 막힌 인간의 선한 본성(本性)이 온 세상에 활짝 드러나는 아름다운 상황이 바로 彰(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이러한 단계로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쉽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렵습니다.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이 더 솔직한 표현일 것입니다. 넘어오지 말라고 막아놓은 것이 障(장)이고, 넘어오지 못하도록 계획적으로, 의도적으로 막아놓은 것이 障(장)이라는 장치이기 때문입니다.
강물이 민가(民家)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것이 障(장)이고, 적군이 우리 땅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것이 障(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障(장)은 '둑'이 되고 '제방(堤防)'이 되며, '보루(堡壘)'의 의미로 쓰이고 있는 것입니다. 보루(堡壘)라는 것은 '최후의 보루(堡壘)'라는 말에서 처럼 적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 설치한 방어용 군사시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총칼과 대포로 무장한 적군(敵軍)도 막아내는 것이 보루(堡壘)일진대, 어찌 나약한 한 인간의 어설픈 돌격을 쉽게 허용하겠습니까?
둑도 무너지고 보루(堡壘)도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육신의 굴레를 넘는 것은 사실상 죽어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사실상 障(장)이라는 둑을 넘을 수 없고, 障(장)이라는 보루(堡壘)를 넘을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견고하고 그렇게 끈질기게,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우리를 막고 서 있는 것이 바로 저 障(장)이라는 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느 세월(歲月)에 彰(창)의 경지(境地)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3. 애(碍·礙) : 거리낄 애
왼쪽의 바위
다음으로 장애(障碍·障礙)의 두 번째 글자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애(障碍)의 '애'자는 보통 碍(애) 또는 礙(애)의 두 가지 형태로 쓰입니다. 이 두 글자의 왼쪽에는 똑같이 바위[石:석]가 버티고 있습니다.
障(장)이라는 글자는 토산(土山)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을 나타냈다면, 여기에서는 이제 바위[石]가 앞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깎아지른 천 길 암벽(巖壁)을 만난 것입니다. 앞의 障(장)은 힘들어도 도전해 볼 여지가 없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K2의 빙벽같은 절벽이 떡 버티고 있으니, 도전의 의지조차 꺾어버리고 있는 듯합니다.
疑(의) 자의 의미
그렇다면 두 글자의 오른쪽에 있는 글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애(碍)자의 오른쪽에 있는 글자는 '얻을 득(得)'자와 같고, 애(礙)자의 오른쪽은 '의심할 의(疑)'자입니다.

위의 그림이 疑(의)자의 금문(金文)의 자형인데, 왼쪽 위에 있는 것은 보통 '소 우(牛)'자로 쓰이는 갑골문입니다. 여기에서는 오른쪽의 사람이 추격하고 있는 대상인 짐승의 의미로 그려진 것으로 보면 될 듯합니다. 아래에는 짐승의 발자국이 찍혀 있으며, 오른쪽 위에 이 짐승을 추격하고 있는 사람이 고개를 이쪽 저쪽으로 돌리며 짐승의 흔적을 찾고 있는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짐승을 잡기 위해서 쫓아가던 사람이 중간에 짐승을 놓친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느 쪽으로 달아났는지 몰라서 이쪽인가, 저쪽인가하고 혼자서 궁리하고 있는 모양을 그린 글자가 바로 疑(의) 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을 표현한 疑(의)자는 '헛갈리다, 의심하다, 미혹되다'의 의미로 쓰여서 헤아림이 정밀하지 못하고, 판단력이 정확하지 못하여,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또 '머뭇거리다, 주저하다'라는 뜻으로 쓰여서 결단력도 부족하여 행동이 과감하지 못하다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또 '응'으로 읽게 되면, '얼 응(凝)'자와 같은 뜻이 되어 '얼음이 응결(凝結)되다'에서와 같이 꽁꽁 얼어붙어 가지도 못하고 오지도 못하는, 꼼짝달싹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뜻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렇기에 礙(애)라고 하면, 이런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절벽[石석]에 가로막힌 것과 같은 상황이 되었음을 표현하는 글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돌파하는 것은 바위를 부수고 나아가야 하는 상황과 같음을 나타내는 암담한 글자가 되는 것입니다.
碍(애)자의 의미

碍(애)자의 오른쪽에 있는 것은 得(득)이라는 글자인데, 得(득) 자의 갑골문을 보면 왼쪽에 있는 것은 조개를 두 쪽으로 나누어 그린 것으로, 재물을 뜻하는 '조개 패(貝)'라는 글자이며, 오른쪽의 十자 모양은 그 조개를 주으려고 내민 손을 그린 글자입니다. 따라서 得(득)은 조개 즉 재물을 얻는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가 됩니다.
그러니 碍(애)자는 이 조개 즉 재물을 취득하려는 시도가 돌[石], 즉 절벽에 부딪혔다는 뜻을 표현하는 글자라고 하겠습니다. 礙(애)에서는 짐승을 얻고자[得득]하는 상황이었지만, 碍(애)에서는 재물[貝패]을 얻고자 하는 것이니, 모두 살아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을 얻는다는 뜻으로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4. 장애(障碍·障礙)의 의미
이상을 종합해 보면 장애(障碍·障礙)라는 말은 그 사람의 내면에 간직한 아름다운 덕과 훌륭한 자질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높은 산이라는 장벽으로 인해 가로막히고, 온 가족이 먹을 식량인 짐승이나 재물을 얻기 위해서 동분서주(東奔西走)하지만, 그것마저 깎아지른 절벽에 가로막히게 되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상황을 맞이한 것을 뜻하는 단어라고 하겠습니다.
앞 부분의 障(장)은 자기 완성에의 길이 틀어막힌 것이라면, 뒷 부분의 애(碍·礙)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경제활동의 가능성이 가로막힌 것을 뜻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장애(障碍)를 만났다는 말은 자기 완성도 할 수 없고, 제 손으로 살아갈 수도 없어서, 오도가도 못하고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매우 곤란한 사정에 처했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나가자니 태산(太山)이 가로막고 있고, 뒤로 가자니 깎아지른 절벽에 가로막혀, 그 사이에 갇혀서 꼼짝도 하지 못하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을 나타내는 말이 바로 장애(障碍)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5. 장애자(障碍者)
그런데 이런 난감한 상황을 뜻하는 장애(障碍)라는 말을 상황이 아닌 사람에다 붙여서, 자신의 내면에 간직한 보석같이 빛나는 아름다운 덕과 훌륭한 자질을 전혀 발휘할 수도 없고, 자신과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서 사냥을 하거나 재물을 취득하려는 시도조차 사방으로 꽉꽉 틀어막힌 사람이라는 뜻의 '장애자(障碍者)'라고 부르는 것이, 과연 몸이 온전치 못한 사람을 존중하고, 그런 사람들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뜻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온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온전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겉으로는 다 멀쩡하게 보여도 속을 들여다 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가 한 둘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이 온전치 못하다고 정신마저 온전치 못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비록 육신이 조금 불완전하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자신의 내면을 빛나게 갈고 닦을 수 있으며, 사람으로 태어난 소명을 온전히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6. 퇴출된 용어들
요즘 사람들이야 기겁을 하겠지만,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병신(病身),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절뚝발이, 앉은뱅이와 같은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말이 신체가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낮잡아 부르는 아주 나쁜 말이라는 낙인이 찍혀 사용이 금지되고, 모두 '장애자(障碍者)'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퇴출되어 쓰이지 않고 있는 이런 예전의 말은, 육신이 불완전한 사람의 내면을 무시하는 그런 말이 아니었으며, 그런 사람들의 가능성을 꺾어버리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병신(病身)이라는 말은 그저 '몸에 병이 있는 병든 사람'이라는 말로, 옛날 선비들이 병든 자기 자신을 가리켜 아주 즐겨 사용하던 말이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옛날부터 성인(聖人)의 경전(經傳)을 암송하여 그것을 임산부나 어린이들에게 들려주며 바른 마음을 가지도록 도와주는 일을 했기에 '경전(經傳)을 외워서 들려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송경(誦經)'이라고 했던 것이 '소경'으로 변화된 것이며, 장님이라는 말은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지팡이[杖:장]'를 들고 다니기에 '지팡이를 들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해서 '장님'이라고 쓴 것일 뿐입니다.
벙어리는 '버브어리'라고 쓰던 말이 '버워리'로 바뀌고, 다시 '벙어리'로 바뀐 것으로, '버브'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말을 하기 위해서 애쓰며 내는 소리를 형용한 말일 뿐이었다고 합니다.《우리말 어원사전》
귀머거리, 앉은뱅이, 절뚝발이, 육손이 등의 말도 모두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그냥 있는 그대로 표현한 말에 불과했습니다.
육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던 이 말 속 그 어디에도, 그런 사람들의 가능성을 무시하는 뜻은 없었습니다. 단지 그 사람이 외형적으로 어떠하다고만 표현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다만 그런 말을 비하(卑下)의 뜻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였으며, 그런 말을 경멸(輕蔑)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문제가 되었던 것입니다.
7. 불인(不仁)
옛 사람들은 육체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가리켜 '불인(不仁)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특히 한의학에서 중풍 등으로 신체의 마비가 온 것을 '불인(不仁)'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인(仁)은 '완성하다' 또는 '온전하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받은 본연지성(本然之性)을 온전히 살려서 내면의 덕을 완성한 상태를 인(仁)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논어》를 보면 사람들이 공자에게 어떤 사람의 이름을 지목하면서 '그 사람은 인(仁)합니까?'라고 묻는 대목이 자주 나옵니다. 즉 '그 사람은 덕을 온전히 완성한 사람입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덕을 온전히 완성한 사람은 바로 성인(成人)이요, 성인(聖人)이니, 그런 사람은 세상에 거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이 거의 다 '불인(不仁)한 사람'인 것입니다. 내면의 덕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만 불인(不仁)한 것이 아니라, 육체가 온전하지 못한 것도 불인(不仁)하다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 '불인한 사람'이라고 하여, 다른 사람과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불인(不仁)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온전하지 못하더라도 육체가 온전한 사람과 똑같이, 내면의 덕을 온전히 완성하는 '인(仁)'의 경지로 나아가야 할, 그러나 아직은 인(仁)에 이르지 못한, 그러나 인(仁)의 경지에 이르도록 수양해야 할 '불인(不仁)한 사람'이라고 불러서,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가능성을 인정해주고 격려해 주는 말로 불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좋은 말도 사라지고 없어져 버렸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러나 다시 신체가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불인(不仁)한 사람'이라고 부르게 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불인(不仁)'이라는 말도, '갑(甲)'이라는 말과 같이, 천하에 몹쓸 존재로 천대받아 금지되어 버릴 것이 눈에 보듯 훤하니, 이 아름다운 말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다시 '불인(不仁)'이라는 말을 쓰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더욱 갑갑할 따름입니다.
8. 결론
육신이 온전하지 못한 것도 서러운데, 어떻게 그런 흠이 있다고 해서 장애(障碍)에 처한 사람이라고 불러서 그런 사람의 아름다운 가능성마저 무시해 버릴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육신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을 어떤 말로 부르든, 그 말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말을 욕(辱)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이며, 그런 말을 욕(辱)으로 받아들이고, 경멸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오늘의 이런 답답한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런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무슨 좋은 말로 부르든지, 얼마되지 않아서 곧 그 말도 나쁜 비하의 말로 낙인이 찍혀 퇴출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산문(散文) > 용어(用語)'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욕망(欲望)을 다 채울 수 없는 이유 (0) | 2023.10.07 |
|---|---|
| 완벽(完璧)과 완전(完全)의 차이 (0) | 2023.09.17 |
| 변화(變化)란 무엇인가? (0) | 2023.01.04 |
| 믿음이란 무엇인가? (0) | 2022.12.20 |
| 거룩이란 무엇인가? (0) | 2022.10.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