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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散文)/용어(用語)

거룩이란 무엇인가?

by 안화유 2022. 10. 12.

거룩에의 명령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레 11:45)


성경은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명령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만일 이 말씀을 실천하고자 한다면, '거룩'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그 의미를 먼저 알아야 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거룩하게 되는 것인지 그 방법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룩하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를 잘 알지 못하고, 그저 구름처럼 두루뭉실하게 뭔가 영적인 어떤 고귀한 삶을 살라는 뜻이려니 하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런 분명하지 않은 이해를 바탕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중요한 이 '거룩'의 문제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거룩의 어원(語源)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거룩하다'는 '뜻이 매우 높고 위대하다'라고 나와 있으며, 《우리말 어원사전》을 찾아보면 '거룩하다'는 말은 '거륵[偉] + ᄒᆞ[爲] + 다[어미]'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설명으로는 거룩의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과거로 올라가서 '거룩'이라는 말의 어원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고어사전》을 찾아보면 '거룩'의 옛말은 '거륵'이며, '거룩하다'라는 말은 '거륵ᄒᆞ다' 또는 '거록ᄒᆞ다'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거륵ᄒᆞ다'나 '거록ᄒᆞ다'는 말은 '거르다'라는 말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거르다 : 거르다[濾:거를 려]
거리다 : 건지다, 구원하다, 구제하다; 거르다.


이상을 종합해보면, '거룩'이라는 말은 '거룩하다'라는 말의 명사형으로, '거르다' 또는 '거리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거룩'이라는 말은 '여과(濾過)', 걸러내는 것, 즉 '필터링(filtering)'의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즉 우리 삶에서 걸러내야 할 온갖 더러운 것과 악한 것들을 걸러내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헬라어 하기오스의 뜻

hagios: sacred, holy
Usage: set apart by (or for) God
- 출처 : Bible Hub(https://biblehub.com/greek/40.htm)


거룩을 뜻하는 헬라어 '하기오스(ἅγιος)'라는 말은 '하나님을 위하여 분리하다' 또는 '하나님에 의하여 분리되다'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분리한다'는 말은 바로 '거른다'는 말이니, '하기오스' 또한 '걸러낸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헬라어의 의미나 우리말의 의미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거룩하라'는 명령의 말씀

너희는 칠일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출 12:15)
음행 온갖 더러운 것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엡 5:3)


'거룩하라'는 말은 명령으로 주어졌습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일반 명령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만약 거룩하라는 명령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누룩이 온 반죽 덩어리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 우리 삶에 들어와 있는 온갖 음란하고 더럽고 악한 것들이 우리 삶을 가득 채우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 자신을 점령해 버릴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더욱 거룩하라는 명령의 말씀을 신중하게 받아들이고, 이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나 걸러내야 할 것들은 너무나도 달콤하고, 너무나도 집요하게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기에, 거룩은 쉽지 않은 작업이 될 것입니다. 쉽지 않은 작업이 아니라, 그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 것입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우리의 이기심과 탐욕이 주는 유혹이 우리를 거룩과 멀어지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명 이 거룩에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을 매번 성공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거룩을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이며, 깨어지고서라도 다시 거룩을 향한 도전을 멈춰서는 안될 것입니다. 거룩은 우리가 주님 안에서 살아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이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더러운 것들을 받으실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것들은 버려져야 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다'는 평가의 말씀

커피를 내릴 때 필터를 두고 찌꺼기를 걸러내면 순수한 커피를 얻을 수 있듯이,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거룩을 실천하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온갖 악과 더러운 것들을 다 걸러내고 맑고 깨끗한 순수한 존재로 거듭 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고 계신 것으로 생각됩니다.

'거룩하라'는 말은 우리에 대한 명령의 말입니다. 그러나 '거룩하다'라는 말은 거룩을 실천한 결과로 얻어진 결과물이 찌꺼기가 하나도 없이 맑고 영롱한 상태의 것이라는 것을 표현하는 말로서, 하나님께서 거룩을 실천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하시는 긍정적인 평가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에 성공할 때, 우리 마음에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사라지고 없게 될 것입니다. 온갖 악한 것들도 사라지고 생각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거룩이 우리 자신을 온갖 더러운 것들과 음란한 것들과 악한 것들로 부터 우리를 지켜주게 될 것입니다. 거룩으로 우리 마음에 그런 것들이 제거되어 싹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싹이 트지 않는데, 어떻게 그런 마음이 자라며, 어떻게 그런 마음이 우리를 주관할 수 있겠습니까? 거룩한 상태가 되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거룩의 실천 주체의 문제

여기에서 우리는 거룩의 실천 주체의 문제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룩을 실천하는 주체가 '나 자신'인 경우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라면 문제가 좀 달라지게 됩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침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 3:11~12)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 25:31~33)


마태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스스로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인간들을 필터링하여 거룩을 실천하시겠다고 나서는 매우 엄중한 상황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거룩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 명령을 실천했는지 실천하지 않았는지를 이제 스스로 직접 점검한 후에, 거룩한 자들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스스로 걸러내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 거룩을 실천하면, 순수한 자가 되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지만, 내가 스스로 거룩을 실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두 팔을 걷어 붙이고 순수하지 못한 우리를 걸러내게 될 것입니다. 내가 하는 거룩은 축복이지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거룩은 재앙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거룩의 일상화의 문제

이 거룩이라는 것이 한 번 거르기만 하면 그 효과가 평생 지속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문제는 그것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한 번 목욕했다고 해서 그 깨끗함이 평생 유지되지 못하듯이, 세상의 모든 것은 점점 더 낡아지고, 점점 더 무질서해지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거룩의 문제는 우리가 매일 매일 실천해야 할 과제가 되며, 순간 순간 실천해야 할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대학》이라는 책에 거룩의 일상화와 관련된 글이 있습니다.

湯之盤銘曰:「苟日新,日日新,又日新。」
탕지반명왈 :구일신, 일일신, 우일신《대학(大學)》
탕임금의 세수하는 대야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만일 어느날 새롭게 되었다면, 하루하루 새롭게 하고 또 날마다 새롭게 하라.


자신이 세수하는 대야의 바닥에 위와 같은 글귀를 새겨두고, 매일 매일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새롭게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거룩의 삶이 일상화 되고 있다는 것은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삶을 그렇게 좋게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애초에 걸러낼 어떤 것들이 생겨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매일매일 걸러내는 삶은, 매일매일 걸러내야만 할 더러운 것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며, 매일매일 경건(敬虔)에 실패하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걸러낼 것이 없는 삶입니다. 그 비결은 아래에서 언급하겠습니다.

 

거룩의 실천 방법

1) 입지(立志)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거룩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거룩을 실천하는 첫 단계는 거룩을 실천하겠다는 뜻을 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부터 거룩한 삶을 살겠노라는 마음을 세우지 않았는데, 저절로 거룩해지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룩하지 않은 삶은, 내가 그런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은 자연스레 거룩하지 못한 삶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그것은 세상의 이치가 그렇고, 자연의 법칙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점점 질서가 무너지고, 점점 흐트러지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해이(解弛)증가의 법칙'이 작용하는 세상에서, 해이해지는 자신을 다잡는 것은 저절로 이루어질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에너지를 투입하지 않고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입니다. 물이 역류하는 것처럼,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댓가가 필요하다는 말이며, 고통이 따른다는 말입니다.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힘은 어디에서 얻습니까? 입지(立志)입니다. 뜻을 세우는 것입니다. 뜻을 세우면 힘이 생깁니다. 그 힘이 자연의 질서를 조금은 거스르게 도와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우리가 세운 뜻 자체도 해이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문득 우리는 내가 언제 무슨 결심을 했는지조차도 잊어버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거룩하지 못한 삶에 절어있는 자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2) 필터 장착
거룩한 삶을 살겠노라 뜻을 세웠다면, 다음 단계는 걸러내기 위한 도구, 즉 필터를 장착해야 합니다. 커피를 거를 때는 거름종이, 즉 여과지 한 장만 꼽으면 됩니다. 그러나 내 삶의 더러운 것을 걸러내기 위해서는 무슨 필터를 채용해야 할까요? 어느 회사의 제품을 구입해야 할까요? 음란한 생각을 걸러내는 필터, 미움을 걸러내는 필터, 분노를 걸러내는 필터, 이기심을 걸러내는 필터, 게으름을 걸러내는 필터... 이런 필터를 어디에서 구입할 수 있으며, 얼마를 주면 살 수 있을까요? 세상에 눈을 씻고 찾아봐도 그런 필터를 파는 곳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여과지로 걸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청언동(視聽言動)의 필터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거룩을 실천하고자 하면 무슨 필터를 준비해야 할까요? 그 대답은 《논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공자의 제자 안연이 공자께 인(仁)을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질문합니다. 그때 공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子曰:"非禮勿視,非禮勿聽,非禮勿言,非禮勿動。"
자왈:"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

예에 맞지 않는 것은 보지 말고, 예에 맞지 않는 것은 듣지 말며, 예에 맞지 않는 말은 하지 말고, 예에 맞지 않는 행동은 하지 말라.

 

공자의 이 말을 네 글자로 줄여서 시청언동(視聽言動)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이 왜 필터가 됩니까? 필터가 무엇입니까? 걸러주는 것입니다. 무엇을 걸러주는 것입니까? 온갖 더럽고 악하고 나쁜 생각을 걸러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어디에서 생기는 것입니까? 모두 우리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들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왜 이런 것들이 생겨납니까? 외부에서 악한 것들이 마음으로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좋지 않은 것들이 마음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악한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차단하면 됩니다. 눈으로 들어오는 것 중에서 좋지 않은 것을 걸러서 보지 않도록 하는 것이며, 귀로 들어오는 것 중에서 나쁜 것들을 걸러내고 듣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에 좋지 않은 것이 유입되지 않으면, 좋지 않은 생각이 일어나지 못할 것이고, 좋지 않은 생각이 일어나지 못하는데, 어떻게 좋지 못한 일을 행하는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으로 입력되는 모든 것들을 걸러주는데, 어떻게 마음에 좋지 못한 것이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마음을 지키는 한 가지 방법이 되는 것입니다.

 

외부의 좋지 못한 정보가 입력되는 것은 입력센서인 눈과 귀에서 걸러주고, 좋지 못한 행동을 걸러주는 것은 출력도구인 입과 손발을 제지시켜 막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악을 걸러주는 필터가 되는 것입니다.

 

구체적 입력 통제 방법

그렇다면 좀 더 들어가 보겠습니다. 예에 맞지 않는 것은 보지 말라고 했는데, 눈에 보이는 것을 어떻게 보지 말라는 것입니까? 눈으로 먼저 보고 평가를 해야, 봐도 되는 것인지, 보면 안되는 것인지 알 수 있는데, 어떻게 보지도 말라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이 봐도 되는 것인지 여부를 알 수 있겠습니까? 예, 그렇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뭔지 봐야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가를 하기 위해 보게 된다면, 이미 보지 말아야 할 그것을 본 것이 됩니다. 그럼 거르기도 전에 이미 걸러야 할 것들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와 버린 것이니,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거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꼭 봐야 할 것, 꼭 필요한 것만 골라서 보라는 말씀입니다. 필요하지도 않은데, 이것 저것 뒤적거리다가는, 보지 말아야 할 쓸 데 없는 것까지도 보게 될 것이니, 꼭 필요한 것만 찾아서 보는 것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꼭 봐야 할 것만 찾아서 보고, 꼭 필요한 것만 골라서 보라는 말입니다. 인터넷을 켜놓고 폭풍 스크롤을 하고 있지 말라는 말입니다. 봐도 되고 안 봐도 되는 것이라면 보지 말고,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것이라면 듣지 않는 것이 좋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일단 눈으로 봤다면 빨리 눈을 돌리고, 일단 귀로 들었다면 빨리 다른 곳으로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다른 곳에 마음을 집중할 것을 찾게 되면, 방금 전에 본 것이나 들은 것이 내 마음에 남아 있지 않도록 하는 것에 조금은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 출력 통제 방법

잘못된 말과 행동을 거르는 방법도 동일합니다. 말은 꼭 해야 할 말만 하라는 것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말은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말이 많으면, 탈도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꼭 필요한 말만 하고, 꼭 필요한 행동만 하라는 말입니다.

 

인생을 그렇게 딱딱하게 살라고 하면 무슨 재미로 살겠습니까? 사람이 좀 쓸데없는 말도 하고 살아야 하고, 실없는 짓도 하면서 살아야 숨을 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꼭 해야 할 말만 하고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것을 많이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말입니다. 방종으로 흘러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 절제하면서 조심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 하나의 복병

그런데 아무리 눈과 귀를 통제한다고 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이미 본 것과 들은 것, 경험한 옛 기억을 꺼내서 되새기는 것입니다. 옛날의 기억을 꺼내서 마음으로 계속 음미하며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눈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귀로 듣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옛날의 기억을 다시 꺼낼 때마다, 우리의 감정이 다시금 요동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그런 기억의 되새김질을 자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쉽지 않다면, 늘 다른 집중할 것을 찾아서 거기에 마음을 집중하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몰입하고 있으면 더 좋습니다. 쓸데 없는 것이 아니라면. 집중을 하고 몰입을 하면, 다른 쓸데없는 추억을 곱씹을 시간이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훈련소에서 훈련병들이 잡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잠시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계속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 하시면 조금은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 방법의 한계

도움이 될 만한 구체적인 방법을 몇 가지 제시해 보았지만, 사실 이론이야 간단하지만, 실제로 이것을 실천해 나가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이것이 쉽겠습니까? 인간이 어떻게 이런 것을 다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상 쉽지 않은 것이고,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 방법을 실천하면, 실천하지 않는 것보다는 좋겠지만, 오래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마음 속에 거룩에 대한 다짐을 계속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인간의 결심도 계속적으로 쇠하고, 다른 바쁘고 중요한 일들과 세상 살이로 인해서, 거룩에 대한 생각이 어느 틈엔가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4:8의 말씀처럼 이런 방법은 '육체의 연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근본적인 도움은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도 '약간의 유익'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은 인간적인 방법이고, 육신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오래 유지하고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결론

그렇다면 좋은 방법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아주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 충만입니다. 성령 충만한 상태가 되면, 이런 필터를 적용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이런 더럽고 악한 생각들이 내 마음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가득 담긴 그릇에 다른 것을 더 담을 수 없듯이, 성령이 마음에 충만하게 되면, 다른 생각이 들어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태는 성령 충만한 상태를 유지하는 동안 계속 지속되는 것이니, 이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온전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방법으로 자신을 지키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거룩을 지켜가고자 기도한다면, 자애로운 하나님의 선물이 분명히 있게 될 것입니다.

성령 충만한 상태가 되면 우리의 거룩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태에 이르기 전까지는, 우리는 우리의 눈과 귀를 제어하고, 우리의 입과 손발을 제어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지키고, 우리 자신을 방종에 빠지지 않도록 단속하는 작업을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기 않겠느냐?(마 7:11)"고 말씀하신 주님께서, 우리가 늘 거룩할 수 있도록 은혜로운 선물로 우리를 채워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

 

※ 최근 수정:2024. 1.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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