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리다는 말의 어원
'다스리다'의 옛 말은 '다ᄉᆞ리다' 또는 '다ᄉᆞᆯ이다'이고, '다ᄉᆞ리다' 또는 '다ᄉᆞᆯ이다'라는 말은 '다 살게 하다' 또는 '다 잘 살도록 만들어 준다'는 말입니다.
다ᄉᆞ리다 : 나라흘 다ᄉᆞ리ᄂᆞᆫ 도리 득인ᄒᆞ기 읏ᄯᅳᆷ이니《인조행장(仁祖行狀)》
다스리다 :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 득인하기 으뜸이니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道理)는 사람을 얻는 것이 으뜸이니《교학 고어사전》362쪽
다ᄉᆞᆯ이다 : 德으로 ᄲᅥ ᄇᆡᆨ셔ᇰ을 다ᄉᆞᆯ이ᄂᆞ니《소학언해(小學諺解)》선조판(宣祖版)
다스리다 : 덕으로써 백성을 다스리노니
덕으로써 백성을 다스리노니《교학 고어사전》363쪽
다스린다는 것은 권한이 아닌 책임
따라서 '다스린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자기 마음대로 다른 사람을 함부로 부릴 수 있다는 권한을 부여하는 말로 착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스린다'는 말은 오히려 세상 모든 사람들과 산과 들의 모든 동물과 식물로부터 하늘의 새와 강과 호수·바다의 물고기나 곤충, 벌레에 이르기까지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이 자연과 다 조화를 이루며 다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주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짊어진 매우 묵직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 살게 하는 것의 핵심
그렇다면 다스리다, 즉 다 잘 살도록 한다는 것의 요체(要諦)는 무엇일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논어(論語)》에 참고할 만한 구절이 나옵니다.
子適衛, 冉有僕。子曰: "庶矣哉!" 冉有曰: "旣庶矣, 又何加焉?" 曰: "富之." 曰: "旣富矣, 又何加焉?" 曰: "敎之."
자적위, 염유복。자왈: "서의재!" 염유왈: "기서의, 우하가언?" 왈: "부지." 왈: "기부의, 우하가언?" 왈: "교지."
공자께서 위나라로 가실 때 염유가 수레를 몰았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백성들이 참으로 많구나!" 염유가 물었다. "백성이 많아졌으면 또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먹고사는 것이 풍족하게 만들어줘야지." 염유가 물었다. "백성들이 먹고살 만하게 되었으면 그 다음에는 또 무엇을 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백성들을 가르쳐야 하느니라." 《논어(論語)·자로(子路)》
다스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논어의 위의 말은 거의 다스림에 대한 교과서라고 할 만큼 다스림의 의미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삶의 문제 해결
그 첫째는 부(富)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부(富)하게 해 준다는 것은 부자(富者)가 되게 해 준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富)는 '재벌(財閥)'이 되게 만들어 준다는 말이 아니라,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을 정도로 음식이나 재물이 풍부한 상태'라는 말입니다. 즉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 또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삶이 가능할 정도의 재물을 갖춘 삶'이 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즉, 다스림의 첫 번째 과제는 '경제 문제의 해결'이라는 말입니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경제 문제는 의식주(衣食住)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니, 우선 입을 옷이 있어야 하고, 먹을 음식이 있어야 하며, 또 거주할 집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한다는 과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식주의 수준은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면 충분한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유지할 수 있고,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다운 삶의 문제 해결
사람은 돼지나 소와 같은 짐승과는 다른 존재로서,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로 만족할 수 없는 또 다른 과제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난 목적을 이루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덕(德)에 관계된 문제이며, 인(仁)과 의(義)의 문제이며, 어떻게 살아야 인간답게 사는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아는 것' 즉 '지식(知識)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 교육(敎育)이 필요하다고 공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의 경제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해서 이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경제적 토대가 마련되지 않으면,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려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과연 사람다운 삶을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할 여유가 없게 되니, 어떻게 저 짐승과 다른, 사람다운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먼저 필요한 것이라고 공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이 짐승과 달리 사람다운 삶을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가에 대해서는 철학의 문제가 개입되기에 여기에서 무엇이라고 단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시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고, 장소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며,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일관되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본성(本性), 즉 마음의 문제이며, 선(善)의 문제이며, 인(仁)과 의(義), 사랑의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가 다스릴 수 있는 자인가?
一有聰明睿智能盡其性者出於其間,則天必命之以爲億兆之君師,使之治而教之,以復其性。
일유총명예지능진기성자출어기간,즉천필명지이위억조지군사,사지치이교지,이복기성
한 사람이라도 총명하고 지혜로워서 그 본성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백성 가운데에서 나오면, 하늘이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임금과 스승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치게 하여 그 본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한다.《대학(大學)·장구서(長句序)》
이렇게 본다면 '다스린다'는 말은 누구나 쉽게 덤벼들 수 있는 그런 가벼운 일은 아닌 듯합니다. 그래서 유학(儒學)에서는 다스리는 일은 세상을 경륜할 만한 덕과 지식을 가진 성인(聖人)만이 할 수 있는 일이며, 하늘의 명(命)을 받은 사람만이 행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해서, '치자(治者)의 자리'는 바로 '성인(聖人)이 앉을 자리'라는 공식을 세웠으니,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다스리는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인(聖人)만이 이 막중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왜?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성경》 창 1:27~28
그런데 성경은 유학의 입장과 달리, 일반 명령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런 다스리는 책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이 세상을 다스리는 책무를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스리는 일이라는 것이 참으로 막중한 일이기에, 사실 아무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그런 일은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 가정을 제대로 다스리는 일도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하물며 온 나라를 다스리고, 온 세상을 다스린다는 말입니까? 그런데도 왜 성경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엄청난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못난 사람은 좀 못난 대로,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세상을 모두 다 잘 살게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말로 해석해볼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아무리 이름 없고 무지한 산골의 아낙이라고 해도, 자기 집으로 찾아온 짐승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고, 주변의 풀과 나무를 돌보는 일을 할 수 있고, 쓰레기를 재활용하고, 이웃의 삶에 눈을 돌릴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런 작은 일들이 모이고 모여서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된다면, 모두가 다 잘 살게 하는 일, 즉 다스리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이것을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하나로 동참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보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성인(聖人)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넌지시 돌려서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다스리는 일이 참으로 막중하고 힘겨운 일이기에 사실 성인이라고 해도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에게 이런 막중한 일을 부과한 것은 모든 사람이 성인이 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이 숨어 있는 말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론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한 민족은 일언이폐지하면 모두 성인(聖人)을 만드는 데 있다. 대한(大韓) 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忿)해하는 살벌, 투쟁의 정신을 길렀었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 백범 김구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다스린다는 말은 세상의 모든 생명이 모두 다 조화를 이뤄 잘 살아가게 해 준다는 엄청난 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직 세상을 경륜할 덕과 지혜와 용기를 갖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명하신 다스림의 명령을 수행하고자 한다면, 우리 모든 사람들이 다 성인이 되어야 한다는 김구 선생의 말씀처럼, 우리 각 사람이 스스로 성인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을 다듬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비록 성인이 되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각자가 자기가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세상을 살리는 작은 일에 동참할 수 있을 것으로도 생각됩니다. 다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이 막중한 책무를 부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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