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인생이 덧없다고 말합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덧없는 것이고, 세상 만사가 모두 덧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덧없다는 말은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듯도 하지만, 정확하게 뭐라고 콕 꼬집어 표현하기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덧없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국어사전의 풀이
국어사전을 보면 덧없다는 말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지나가는 시간이 매우 빠르다는 뜻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풀이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쓰는 덧없다는 말과 어울리지 못하는 풀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어사전》을 찾아보면 덛이라는 말에 시간이라는 의미가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주어진 시간이 매우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덧없다는 의미라면, 이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으니, 그 짧은 시간만이라도 열심히 일하고 알차게 살라는 의미로 읽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덧없다는 말은 그렇게 사람들을 진작(振作), 즉 떨쳐 일어나게 하는 의미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것이 무상(無常)하고 허무(虛無)한 것이니, 쓸데없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정반대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덧없다는 말의 의미를 시간(時間)과는 다른 의미에서 그 기원을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더의 속뜻
인생이라는 것이 덧없다는 말에서 덧 또는 더는 어떤 대상에 다가가서 그 대상을 잡아서 거기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도록 유지한다는 의미의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더듬다라는 말은 무엇을 찾기 위해서 어딘가에 손을 접근시켜 만지는 동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던지다라는 말의 고어는 더디다인데, 여기에서도 손으로 무엇을 잡는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또 더으다, 더어다 또는 더하다라는 말은 다른 대상에 무엇을 추가한다는 말이며, 더위다 또는 더위잡다라는 말은 손으로 무엇을 잡는다는 말입니다. 또 더불다라는 말은 어떤 대상과 함께 한다는 말이며, 더블이 또는 더부살이는 어떤 대상에 붙어서 그와 함께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이런 말을 통해서 살펴보면 더라는 말 속에는 추구(追求), 접착(接着), 고정(固定), 획득(獲得), 유지(維持), 불리(不離:떨어지지 않음), 불실(不失:잃어버리지 않음) 등의 의미가 숨어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단어를 보면 더라는 말에 붙 또는 잡이라는 말을 덧붙여서 그런 의미를 좀 더 분명하고 뚜렷하게 드러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더라는 말은 더하다라는 말에서처럼 다른 대상을 잡아서 그것에 다른 어떤 것을 덧붙인다는 의미이므로 위의 의미를 모두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덧이라는 말에서 ㅅ은 사이시옷의 용도로 보입니다. 따라서 더나 덧이나 덛은 같은 말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고어에서도 더-, 덧-, 덛-은 서로 뒤섞여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대상이 있는데, 그 대상에 다른 어떤 것을 덧붙여서 계속 유지시키는 것을 더라고 하면, 기존에 있던 어떤 대상에서 일부분을 제거하여 떼어내는 것은 덜이됩니다. 그래서 덜다, 덜어내다라는 말로 쓰이는 것입니다.
덧없다는 말
덧없다는 것은 반드시 선재(先在)하는 어떤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미리 존재하는 어떤 대상을 두고서, 그 대상을 잡아서 거기에 다른 어떤 것을 추가시키고, 그 상태를 지속시키려고 하는 시도 또는 노력은 의미가 없다,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그런 시도를 하지도 말고, 그런 일을 하려고 쓸데없이 마음을 쓰지도 말라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잡을 수 없는 아지랭이를 잡으려는 것과 같고, 하늘에 떠 있는 뜬구름을 잡으려는 시도와 같은 것이다.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사라지는 안개를 잡으려는 것과 같다. 잡더라도 그것을 계속 가지고 있을 수도 없다. 세상만사 모든 일이 다 그러한 것이니, 애초에 그런 시도를 하지도 말고, 그렇게 하려는 마음을 먹지도 말라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덧없다는 말은 불교에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말로도 표현되고 있습니다. 諸(제)는 모두, 전부라는 말이며, 行(행)은 행하는 일이니, 諸行(제행)은 모든 일, 모든 것이라는 말이 됩니다. 常(상)이란 것은 시간과 장소, 시대와 상황의 변화에 상관없이 변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無常(무상)이라고 하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바뀐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諸行無常(제행무상)은 세상만사(世上萬事) 모든 것은 변하지 않고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덧없다는 말이 왜 諸行無常(제행무상)이라는 말로 쓰일 수 있는 것일까요? 덧없다는 말의 의미 중에서 어떤 대상을 붙잡더라도 그것을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측면에서 무상(無常)이라고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있다면 그것은 常(상)이겠지만, 계속 가지고 있을 수 없다면 그것은 常(상)이 아니기에 무상(無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애초에 무엇을 잡으려고 하지도 말고, 가지려고 하지도 말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어떤 것을 영원히 소유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을 추구하거나 잡으려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과연 합당한 태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축구나 야구와 같은 운동 세계를 보면 한 대회의 패권을 차지하려고 그렇게 노력하고, 그렇게 땀을 흘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시도나 노력이 모두 허무한 것이고, 쓸데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담(餘談)
인생은 덧없는 것이라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불교(佛敎)와 노장(老莊)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세상 만사 모든 일은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잡았다고 하더라도 항상 그 상태를 계속 유지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즉 무상(無常)하다. 그러니 무엇을 잡으려는 마음, 즉 집착(執着)을 버리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또 노장(老莊)에서는 그렇기에 애초에 인위적(人爲的)으로 뭘 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버려 두라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최고의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불교와 노장이 이렇게 서로 비슷한 입장에 서 있기에 불전(佛典)을 읽어보면 마치 노장(老莊)의 글을 읽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떨칠 수가 없고, 노장(老莊)의 글을 읽어보면 마치 불전(佛典)을 읽고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힐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유학(儒學)이나 기독교(基督敎)는 이런 입장과는 상반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잡을 수 있는 것이고,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입장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인생은 덧없는 것이 아니라, 의미있는 것이고, 가치있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이 하기에 달려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만일 그렇다면 인생이란 덧없는 인생이 아니라, 덧있는 인생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불도(佛道)나 선도(仙道)를 추구하는 사람들 또한 무엇인가 잡을 수 있는 것이 있고, 무엇인가 이룰 수 있는 것이 있고, 또 무엇인가를 이루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에, 이 속세를 버리고 저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뭔가를 잡으려고 집착(執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만일 세상만사 모든 일이 다 덧없고 부질없는 일이라면 왜 그런 삶을 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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