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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散文)/용어(用語)

만족(滿足)의 수준

by 안화유 2023. 10. 14.

만족(滿足)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왜 만족(滿足)하기가 어려운 것일까요? 그것은 만족(滿足)의 수준(水準)이 너무 높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너무 높은 수준을 바라고 있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되면 만족해야 할까요? 만족(滿足)이라는 글자 속에서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滿(만) 자의 의미

滿(만)이라는 글자는 가득 찬 상태를 나타내는 글자입니다. 갑골문이나 금문을 볼 수 없어서 무엇을 그린 글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氵[수:水]가 있는 것을 통해서 볼 때, 어디에 물이 가득찬 상황을 나타내는 글자로 생각됩니다.

 

足(족)의 갑골문

足(족)이라는 글자가 무엇을 그린 것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리고 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足(족)이라는 글자의 갑골문의 모습입니다. 왼쪽 그림은 상(商)나라 후기의 자형(字形)으로 소개되고 있고, 오른쪽 그림은 후대(後代)인 서주(西周) 시대 중기(中期)의 자형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참고 : 漢典 https://www.zdic.net/hans/足

 

오른쪽 자형만을 보면 足(족)이라는 글자는(정)이라는 글자와 같은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아래쪽 부분은 을 나타내고 위쪽의 둥근 부분은 발로 걸어서 가고자 하는 대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일정한 목표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는 발을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른쪽 그림보다 더 앞 시대의 자형인 왼쪽 그림을 보면 足(족)이라는 글자는 종아리와 발을 그린 글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에 통통한 종아리가 표현되어 있고, 아래쪽에는 다섯 개의 발가락 중에서 세 개가 표시되어 있는 발과 짙은 색으로 표시된 뒤꿈치가 보일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종아리와 발을 그린 足(족)이라는 글자가 후대의 주(周)나라 시대에 와서 좀 더 간결하게 그 모습이 바뀐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족)이라는 글자는 종아리와 발을 그린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足(족) 자의 의미

을 뜻하는 足(족)이라는 글자는 채웠다, 그러니 넉넉하다, 충분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충분하게 채웠으니 분수를 지키고, 그 상태를 만족하게 여기고 중단해야 한다, 더 이상의 시도를 그치고 그 자리에 머물러야 한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입니다.

 

만일 이런 足(족)의 상태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한 숟가락을 더 뜨게 되고, 한 삽을 더 올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足(족)이라는 글자는 그런 상태로 나아갈 경우까지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足을 []로 발음하게 되면, 그때는 더하는 것이고, 보태는 것이 되어, 과도하게 되고, 지나치게 된다는 의미로 쓰이게 됩니다. 《논어·공야장》제24장에 그 사례가 보입니다.

 

··

교언·영색·공,좌구명치지,구역치지

 

능수능란한 말과 아름다운 얼굴 표정, 지나친 공손함을

좌구명은 부끄러워하는데, 나 공자 또한 그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논어·공야장》제24장

 

만족(滿足)에 대한 권고 수준

이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야 할 단계에 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되면 만족해야 할까요? 어느 정도에 도달하면 만족하게 여겨야 하는 것일까요?

 

1) 한자의 권고 수준

만족(滿足)이라는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물이 발[足]까지 찼다[滿]는 뜻이 됩니다. 물이 발목까지 찼다면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그 이상 차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과도한 것이고, 분수를 넘는 것이며, 지나친 것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런 수준까지 되기를 바라지 말고, 발목 정도 찰랑찰랑하는 지금 가지고 있는 그 수준을 족한 줄로 여기라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 만족(滿足)이라는 말을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기대 수준이 너무 턱없이 낮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2) 성경의 권고 수준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어떨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잘 알고 계신다고 하니,《성경》에서는 조금 더 현실적인 권고 수준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 지족(知足)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足)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富)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성경》디모데전서 6:6~1

 

 

결국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는 말입니다. 그 정도로 만족(滿足)할 줄 모르고 부하려고 하다가는 심각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까지 덧붙어 있습니다...

 

3) 유학(儒學)의 권고 수준

그렇다면 유학(儒學)의 기준은 어떨까요? 유학(儒學)은 실용적인 학문이므로 좀 더 적절하고 현실적인 기준을 제시해 주고 있지 않을까요? 율곡(栗谷) 선생의 《격몽요결》에서 그 답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衣服,不可華侈,禦寒而

飮食,不可甘美,救飢而

居處,不可安泰,不病而

惟是學問之功、心術之正、威儀之則,則日勉勉,而不可自足也。


옷은 화려하거나 사치스러워서는 안 되고, 추위를 막을 정도면 된 것이다.

음식은 달고 맛있는 것을 구해서는 곤란하고, 굶주림을 막을 정도면 충분하다.

집은 편안하고 클 필요가 없고, 집 때문에 병이 나지 않을 정도면 괜찮다.

오직

학문을 위한 공부와 마음을 바르게 다스리는 것과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법도는

날마다 힘쓰고 힘써야 할 것이고, 스스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격몽요결》지신(持身)

 

옷은 따스할 정도까지는 필요없고, 춥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고, 음식은 맛있는 것은 애당초 불필요하고, 배가 부를 정도가 아니라 배가 고프지 않을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며, 집은 집 때문에 병이 날 정도가 아니면 만족하라는 말씀입니다...

 

4) 결론

만족(滿足)이라는 한자, 《성경》의 말씀이나, 율곡 선생의 말씀을 살펴보더라도 어느 것 하나 우리의 마음을 만족하게 하고, 우리의 고개를 끄떡이게 하는 기준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모두가 한결같이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답답한 말씀만 늘어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만족(滿足)해야 할 이유

그렇다면 왜 만족의 수준을 저렇게까지 낮추라고 요구하는 것일까요? 왜 만항(滿項:목까지 채움)이나 만복(滿腹:배까지 채움)이 아니라 만족(滿足:발까지 채움)이라고 했을까요? 수영장에 들어가면 가슴이나 허리까지 찬 물도 그렇게 위험한 상태로 인식되는 것은 아닌 듯한데, 왜 이 말을 만든 사람들은 굳이 발만 채웠으면 만족하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만족하지 못하는 대상은 바로 수영장 물과 같은  평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수영장의 물 높이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수영장의 물 높이가 아니라, 부동산자동차이며, 나의 지위이며, 통장에 찍힌 잔고이며, 자식의 성적이고, 배우자이며, 건강과 같은 것이고, 이목구비(耳目口鼻)의 욕망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은 모두 내 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에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허락 즉 명(命)이 없으면 얻을 수 없는 것이고, 채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잡으려고 하고, 잡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허망한 것들을 잡으려고 하는 과도한 욕심(慾心)을 좇다가는, 만족은 커녕 불만(不滿)만 쌓이고, 자신을 위험(危險)한 상황에 빠지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 여름 기습 폭우보다 더 세찬 세상의 파도를 헤쳐나가야 하는 인생이, 아지랑이와 같이 잡을 수 없는 헛된 것을 잡으려고 욕심(慾心)을 부리고, 만족시킬 수 없는 의 욕망(慾望)을 충족시키고자 한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을 망치는 위험한 결과로 이어지게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만족(滿足)이라는 말을 만들어준 선인(先人)들은 우리로 하여금 안전하고 평안한 삶을 위하여 만족의 수준을 대폭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여름철에 폭우가 내려서 물이 종아리를 채울 정도가 되면 벌써 위험한 상태이니 계곡물을 건너려고 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인생이라는 여정계곡물을 건너는 것보다 쉽다고 말할 수 없기에, 발만 차면 족한 줄을 알라는 만족(滿足)의 수준은 우리가 인생이라는 세파(世波)를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훌륭한 안전 지침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과도한 욕심을 부리다가는 계곡물보다 더 강력한 세상의 파도가 언제 우리를 휩쓸어 갈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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